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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香의 수필과 칼럼

숨바꼭질

by 茶香 2014.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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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바꼭질 / 茶香 조규옥

 

 어딜 갔을까?

 보이지 않는다. 지하 주차장에 세워 둔 내 자동차가 어디로 갔는지 아무리 헤매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분명 지하3층 주차장에 세워두었는데 나랑 숨바꼭질이라도 하자는 심산인지 끝내 눈에 띄지 않는다. 지하 4층에 세워 두었는가 싶어 발을 돌리려는 찰나 어디서 나타났는지 내 자동차가 은빛 웃음을 머금고 내 앞에 서 있다. 나 참! 무슨 조화 속인지 .....

 

 사람만 숨바꼭질 하는 게 아니라 이런 사물들도 숨바꼭질이 하고 싶은 가 보다. 잘 넣어 둔 손톱깎기를 찾으면 대 여섯개나 되는 손톱깎기는 어디로 숨었는지 아무리 찾아도 안 보여 포기하고 돌아서면, 며칠이나 아님 몇 달 후에 슬그머니 내 곁에 와 있고, 귀이개는 매번 어디로 숨는지, 사도 사도 끝없이 숨어 버린다.

 

 어제 아침이다.

 출근을 하려는데 자동차 열쇠가 없다. 가방을 뒤집어 엎어 보아도 안 보이고 어제 입던 옷을 탈탈 털어 보아도 없고 결국은 보관해 두었던 여분 열쇠를 찾아들고 출근을 하고 돌아왔다. 저녁 식사를 하려고 냉장고를 열었더니 자동차 키는 그 속에서 방긋 웃는다. 요즘은 이런 일이 비일비재 하다.

 

 언제 가는 저녁 식사 준비를 하느라 시금치를 씻어 놓고 물이 끓어서 씻어놓은 시금치를 찾으니 또 숨어버리고 없다. 냉장고 안은 물론이고 베란다로 안방으로 미친 듯이 찾았지만 없다. 옛 어른들 말로 정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물은 설설 끓는데 씻어놓은 시금치는 보이지 않고 머리는 지끈지끈 아파오고 할 수 없이 가스렌지 불을 끄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두부찌개를 끓이려고 그 냄비 뚜껑을 열었더니 ‘아~~뿔사, 곤죽이 되어버린 시금치가 그 속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당연하다 싶다.

 내 머리가 제조된지 반백년도 지났으니.... 그 동안 AS 한 번 받지 않았으니.... 내 머리가 좀 어떻게 되는 게 당연하다지만 이 건 좀 심하다 싶다. 계약서를 찾아 장롱을 다 뒤집어 놓기 일 수요. 들고 있는 리모콘을 찾아 삼만 리다. 그런가하면 냉장고 문을 열고 서서 내가 왜 냉장고 문을 열었는지 몰라 망연히 서 있다 슬그머니 냉장고문을 닫고 돌아 선다.

 

 일상의 잡동사니들이 날 못 알아주니 ‘골탕을 좀 먹어봐라’하고 시위를 부리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 잡동사니들의 의리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어느 날 생각지도 않게 철 지난 주머니에서, 거실 쇼파 밑에서 싱긋 웃으며 나타나 제 할 일을 해 주니 얼마나 다행인가. 물론 시효가 한 참 지나서 나타나 팽겨 쳐져 버리는 일도 발생하지만, 요즘 같이 배신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끝까지 주인을 버리지 않는 충성심 하나는 인정 해야겠다.

         

          

 

 

   

   일상의 잡동사니 중  제일 잘 숨어버리는 것이 휴대폰이 아닐까 싶다. 시시때때로 사라져 곤혼스럽기 이를 데 없지만 그래도 다른 녀석으로 유인을 하면 ‘나 여기 있소’ 하고 금방 백기 투항을 해버리니 그나마도 이 휴대폰이 심성이 제일 여리고 이쁜 녀석이다. 기특하다.

 

 나도 한 번쯤 그들이 하는 숨바꼭질을 해보고 싶은 날이 있었다. 추운 겨울날 저녁. 마음이 상 할대로 상해 숨고 싶은 날이 있었다. 자식이고 남편이고 내 알바 아니다싶게 사라지고 싶어 코트를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휴대폰을 끄고 거리를 걷는데 때마침 12월이라 여지저기 상가에서는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이 반짝이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왜 그리 전부 행복해 보이던지 ......

 

  마지막 상영을 하고 있는 영화관엘 들어갔다.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한국영화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모두들 쌍쌍이 앉아 영화를 보고 있었다. 어딜 가나 행복한 사람들뿐이었으니 내가 발 부칠 곳이 없었다. 하지만 이왕 나온 길 ‘어디 속 좀 썩어봐라’ 했지만 그래도 날 찾나싶어 휴대폰을 켜보지만 전화는 자식들에게서도 남편에게서도 오지 않았다. 그 허탈함을 어떻게 말로 어떻게 표현할까. 날은 춥고 혼자 찜질방이나 모텔로 들어 갈 용기도 나지 않고 할 수 없이 집에 들어섰더니 모두들 쿨쿨 자고 있었다. 나만 혼자 분노하고 눈물 그렁대고 만감이 교차했던 것으로 끝이 났다. 완전 KO패였으니 나는 가족에게 그 날의 숨바꼭질은 지금까지 비밀로 덮어 두었다.

 

 숨기의 달인은 돋보기 안경이 아닐까 싶다. 오륙년 전부터 컴퓨터를 보거나 신문이나 책을 볼 때는 어김없이 돋보기 안경의 힘을 빌려야 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하다는 걸 돋보기 안경은 잘 안다. 그래서일까? 자기의 존재를 못 박고 싶은지 수시로 어디론가 숨어 버린다. 한 개도 아니고 두 개를 쓰는 돋보기가 조간신문을 보려는데 어디로 갔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을 때가 다반사다. 오늘 아침도 그러 했다. 거실 소파 틈바구니를 헤집고, 안방 침대로 화장대 앞으로 헤매고 다니며 찾지만 없다. 아침 신문을 포기하고 출근 준비를 서두르느라 거울 앞에 섰다. 그런데 이 건 뭔가! 돋보기가 머리 위에서 혓바닥을 낼름 내밀며 웃는다. 아까 잠깐 컴퓨터를 켰을 때 보고 머리에 올려 논 모양이다. 거울속의 나도 따라 웃고 만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한 세상 사는 게 전부 숨바꼭질이 아닌가 싶다. 세상살이가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내게 맞는 보물들을 찾아 내, 내 것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지 싶다. 찾아내면 어는 순간 사라지고 숨어버리고..... 신이 숨겨놓은 보물들을 찾아내어 울고, 웃고..... 남의 눈에 잘 보이는 것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아 애를 태우며 산다. 행복이라는 것도 그런 게 아닐까? 내가 가지고 있으면서도 모르고 살다가 불행이 닥쳐왔을 때에야 ‘그래, 그 때가 행복 했었지’하는 것처럼.... 그렇게 한 세상 살면서 삶의 깊이가 점 점 더 깊어가는 것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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