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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밤의 산책

by 茶香 2016. 7. 9.

Photo Essay.....

 

 

       여름 밤의 산책 / 茶香조규옥

 

 


 시계를 보니 밤 10시다. 잠시 망설이다 입은 채로 휴대폰을 챙겨든다. 운동화를 신고 아파트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른다. 폭신한 운동화 바닥이 느껴져 걸을 때 마다 기분이 좋다. 맑은 공기가 생각이 날 때면 입은 채로 아파트 옥상에 오르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아파트에서 이 삼 분이면 닿는 야산 둘레 길도 이 밤엔 내 관심을 그리 끌지 못 한다.

  이미 한 밤 중에 아파트 옥상에 올라 산책을 하는 이 버릇은 지인들에게 꽤 알려져 있다. 가끔 지인들 전화를 받으며 뭐하냐는 질문에 아파트 옥상에서 산책을 한다고 하면 깔깔대고 웃는다. 처음엔 달밤에 체조 하냐고 하던 지인들도 요즘은 아파트 옥상을 개방하는 내가 사는 아파트를 부러워 한다. 이 여름밤에 안전한 곳에서 달 보며 별 보며 걸을 수 있는 곳이 서울 하늘 밑에 몇이나 있겠는가.

  유년 시절부터 유난히 밤을 좋아했다. 쏟아져 내리는 달빛도 좋고 아스라한 곳에서부터 내려오는 별빛도 좋았다. 여름밤에 우는 개구리 소리나, 가을밤에 우는 귀뚜라미 소리가 좋았다. 언제부터 밤을 좋아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밤 산책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이 아파트에 이사 오고 나서부터이다. 아내로 엄마로 직장생활로 바빴던 탓에 뚜렷한 운동도 할 수 없었다. 걷기 운동은 내겐 너무나 먼 나라 이야기였다.

  결혼을 하면서 서울 생활을 시작 했다. 사랑하나 믿고, 달랑 제 몸 하나 밖에 없는 남자를 따라 나섰던 용기는 어디서 났을까 싶은 시절. 산동네에서 신혼살림은 시작 됐다.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았던 시절. 달동네에서 내려다 보는 밤 풍경은 없는 게 너무나 많았던 그 시절을 포근히 감싸 안


 

는 마력(魔力)을 부렸다. 힘든 신혼생활을 견디게 해 준 힘이었다. 그리고 잊었다.

  그 잊었던 밤을 이 아파트에 이사 와서 찾았다. 저층 아파트라 아파트 옥상에 오를 수 있었다. 한 밤 중, 아파트 옥상에 오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낮에는 보이지 않던 야산의 오솔길들이 가로등 불빛을 따라 보인다. 때로는 어께를 맞대고 오르는 정다운 연인들도 보인다. 어느 운수 좋은 날은 밤바람을 맞으며 북두칠성을 만나고 은하수를 만난다. 이런 날은 낮에 심사가 꼬였던 일들도 순식간에 풀리고 만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이렇듯 좋아하는 이유는 아파트 앞에 있는 작은 야산 때문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작은 야산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호사를 누리게 한다.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서울 한 복판에서 이런 호사를 어디서 누리랴. 맘 내키면 언제나 저 숲으로 들어가 숲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이 곳. 바람을 만나고 새소리를 만나고 함박눈이 춤을 추는 이 곳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가끔은 사진을 찍는다. 눈이 오면 오는 대로,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그 풍경을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면 사람들은 말 한다. 도대체 서울 한 복판에 그런 곳이 어디 있느냐고. 그런 곳에서 나는 밤을 즐긴다. 밤을 온전히 즐기기엔 서울의 밤은 불안 하다. 어디 그 뿐인가. 산을 오르는 것도 불안 하기는 마찬가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건 사고들이 끊이지 않는 서울이다. 그런 서울에서 마음 놓고 밤을 즐길 수 있는 이 곳이 좋다.

  한 손에 스마트 폰을 들고 경쾌하게 아파트 옥상을 걷는다. 옥상 텃밭에 사는 상추나 얼갈이배추가 내게 말을 걸어 온다. 엎드려 들여다 봐 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바람을 따라 밤하늘을 올려다 본다. 낮에 비 온 탓에 맑은 하늘에 북두칠성이 떴다. 그 둘레에 하나 둘 이름 모를 별들이 반짝인다. 그믐인 탓에 달은 볼 수 없지만 밤바람이 머리카락을 어루만지고 지나가니 기분은 더 없이 좋다. 이러니 어찌 밤 산책을 즐기지 않을 재간이 있겠는가. 걷고 또 걷고 이슥하도록 걸어야지. 어차피 인생은 뛰지 않고 
걸어도 점점 빨라지는데 굳이 뛸 것까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