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는 6.25 참전 용사다. 평생을 잘 들리지 않는 귀로 힘들게 살다 가신 분이다. 누구는 단지 그곳에서 있었단 이유로 크나 큰 대우를 받는 사람도 많다. 그럴 때마다 난 흥분하곤 한다. 무공훈장을 받으신 아버지의 대우는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참전 수당 몇 푼이 전부셨다. 포화 속에 계셨던 탓에 다친 청력은 두고두고 아버지 생전을 힘들게 하셨다. 그 당시 열악했던 행정이나 의료진 탓에 아버지 혼자만의 몫으로 살다 가셨다. 아버지가 치르셨던 그 전쟁의 모습을 워싱턴의 한 공원에서 마주쳤다.
한국 전쟁 추모공원 : 그 공원에서 그 전쟁에 참가했던 그들을 마주치자 가슴이 먹먹했다. 아버지와 같은 전장에서 어쩌면 아버지와 스쳐 갔을지도 모를 그들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미안함이 밀려들었다. 자신들의 전쟁도 아닌 남의 전쟁에 참가하여 쓰러져 갔을 그들은 이 추모공원에 동상으로 세워져 있었다. 판초 우의를 입고 비가 내리는 전쟁터에서 누구는 무전기를 들고 누구는 M1 소총을 들고 이기겠다는 결의가 가득한 얼굴로 빗속을 행군하고 있었다.
아버지 조지 대통령이 추진하고 클린턴 대통령 때 완성된 이 추모 공원의 삼각형의 작은 잔디밭 위에 동상 19명이 세워져 있다. 원래는 38명을 세워야 했지만 작은 땅이라 다 세울 수 없어 절반인 19명만 세우고 나머진 19명은 옆 대리석벽에 새겨져 있었다. 너무 작다고, 너무 초라하다고 생각하다가, 북침이라고, 혹은 그 참전 용사들을 홀대하는 사람들이나 정부를 생각하면 참으로 감사했다. 누가 남의 나라에 와서 목숨을 바쳐 지켜 주겠는가. 내 아버지야 당신의 나라를 지키겠다고 나선 분이지만 그들이야 그럴 의무가 없지 않은가. 저절로 고개가 숙여져 그들을 위해 묵념을 드렸다.
제퍼슨 기념관 : 발길을 돌려 제퍼슨 기념관으로 갔다. 차에서 내려서 가는 길에 눈 닿는 곳마다 이제 막 단풍이 들기 시작한 벚꽃 나무들이 서 있다. 그러면서 묘한 풍경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간간히 왜 워싱턴에는 미국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지 묘한 느낌이 들었었다. 그런데 벚꽃나무 즐비한 길을 걷다 보니 그 실체가 눈에 잡힌다. 워싱턴의 박물관이나 기념관들은 그리스풍이고 여기는 또 생뚱맞게 일본풍이다. 이 벚나무는 일본이 기증해서 심었단다. 일본이 일으켰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처음에 모른 척 눈 감고 있던 미국에 바친 3000그루의 벚나무다. 일종의 뇌물인 셈이다.
다들 알다시피 제퍼슨은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미국의 3대 대통령이다. 미국을 위해 수많은 일들을 제일 많이 한 대통령이지만 홀대받는 대통령 중 한 명이란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대통령 시절에도 수백의 흑인 노예를 가진 인물이어서 그렇단다. 시대적인 환경을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바라보이는 하얀 건물의 제퍼슨 기념관은 둥근 돔 형태로 지어진 그리스 풍이다. 그 옛날 고대 이집트가 숭상했던 오벨리스크 모양으로 만들어진 워싱턴 기념탑을 중심으로 백악관을 바라보고 있다. 아마도 백악관 사람들이 일을 잘하고 있는지 제퍼슨이 모니터링이라도 하고 계셨는지 모르겠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서자 검은 입상(立像)의 제퍼슨이 맞이한다. 그 옛날 치렁치렁한 코트를 입고 청동상으로 만들어져 서 있다. 어쩐지 약간 무섭다는 느낌도 든다. 동상 양 벽에는 그가 천명한 독립선언서가 새겨져 있다. 글의 맥락은 링컨이 말하는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와 비슷하다. 그가 주장했던, 이상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았던, 노예폐지는 그가 죽은 후 100여 년이 지난 후에야 이루어졌다. 그가 한 말 중에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신문이 없는 정부와, 정부 없는 신문’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후자를 고르겠다고 한 말이다. 그 만 큼 그는 언론을 중요시 했고 신뢰했다.

그 말을 생각하며 요즘 우리 언론들을 생각해 본다. 한 대통령이 물러나고 다른 대통령이 등장했다. 약속이나 하듯이 언론에 등장하는 인물이 대폭 물갈이됐다. 익숙히 보았던 인물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인물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저 평범한 소시민인 내 생각에 사라진 그들은 오늘의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지 싶다. 그렇다면 우리 언론들은 과연 믿을 만 한가?라는 생각에 다다르면 답이 없어 그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링컨 기념관 :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링컨 기념관으로 향 했다. 미국 제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 기념관은 미국 국회의사당을 바라보고 있는 위치에 세워져 있다. 미국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이다. 초등학교 때 읽었던 위인전으로 이 분을 먼저 접했던 기억이 새롭다. 위인전 속에는 링컨 하면 떠오르는 일화 한 토막 때문이다. 어느 날 링컨 아버지가 외출 한 뒤에 링컨은 집 알 아름드리나무를 톱으로 잘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링컨 아버지는 톱이 잘 드나 잘랐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정직함에 링컨을 용사 했다는 이야기다. 당시 그 이야기를 읽고 감동을 받았다. 우리 집이었다면 사연을 듣기도 전에 몽둥이를 들었을 거라는 생각에 그 장면이 참 부러웠었는데 그건 허구란다. 그 얘기를 가이드로부터 들으며 참 씁쓸했다. 왜냐면 우리 부모님과 비교하면 원망했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링컨 기념관 앞에 도착하니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워싱턴 시내 투어 때는 별로 사람들이 안 보이더니 다 이 곳에 와있는 모양이다. 파르테논 신전 모양의 기념관은 어마어마하게 컸다. 기념관 계단 위쪽 계단 바닥에는 ‘I HAVE A DREAM'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말이 새겨져 있는데 순전히 독학으로 대통령까지 올랐나 했는데 아니었다. 인종차별 반대를 외친 인권운동가였던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연설했던 자리란다.
안으로 들어가니 정면에 대리석으로 만든 링컨이 의자에 앉아 있다. 너무 높은데 앉아있어 고개를 뒤로 젖히고 봐야 했다. 위대한 대통령이라 높은 자리에 모셔 놨는지 사진 찍기엔 각도가 참 애매하다. 거기다 사람들까지 바글거리니 사진 한 장 찍기 참 힘들다. 이리저리 옮겨가며 사진을 찍고 보니 왼쪽 벽엔 그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문이, 오른쪽 벽엔 링컨의 2번째 취임연설이 조각되어 있었다. 읽을 수 있는 건 왼쪽 벽의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이다. 그 유명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이 곳에 오면 어떤 생각이 들지 참으로 궁금하다.
링컨 기념관을 나오는 길에 40년 만에 지나간 추억을 더듬는 노신사와 마주쳤다.
반갑게 인사를 하며 물어보았다. ‘어떠셨어요? 40년 만에 링컨 대통령을 만나니...? 노신사가 환하게 웃는다. ’ 자네 왔나? 난, 나를 잊은 줄 알았지. 다시 와서 고마우이‘ 하더란다. 하하 웃으며 같이 계단을 내려서는데 워싱턴 기념탑이 비치는 인공 호수에 햇살이 들어 반짝인다. 그 햇살 속으로 ’ 포레스토 검프‘ 영화 속에 나오는 톰 행크스가 따라 들어와 달린다. 톰 행크스가 영화 속 이곳에서 첫 사람을 만난 곳이다. 달리면서 그가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 열어보기 전까지 무엇을 집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외친다. 그래 열어 보기 전 까진 알 수 없지. 어쩌면 보스톤에서 내 인생 전환점이 올지 모르잖아. 그 곳으로 가 보자. 인생이란 알 수 없는 일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