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香 2013. 11. 20. 09:02

 

가을과의 이별여행

 

 

 

 

 

 

 

   오패산 둘레길 풍경들

 

 

 

 

 

 

 

 

 

 

 춥다.

창밖엔 겨울바람이 불고 길 가는 사람들이 너도 나도 옷깃을 여민다. 얼마 전 까지도 서쪽 창으로 보이는 노을 속으로 들곤 했는데 어느 새 노을을 바라 볼 새도 없이 해가 서산으로 황급히 사라지면 어둠이 깔린다.

 

 오늘은 바람이 얼마나 센지 그 곱던 단풍잎들이 추풍낙엽이 되어 땅으로 떨어지지도 못하고 공중에서 바람에게 이리저리 휘둘려 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 한다. 안쓰럽다. 꽃이 떠난 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스산하다.

 

 가을은 떠남의 계절이다.

화사하게 꽃 피우면 사랑을 속삭이던 일도 타들어갈 듯 뜨거웠던 열정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냉정하게 돌아서서 꽃이 간 길을 따라 나선다. 황량해져 가는 들판에 서서 떠나는 이의 아픔보다 남겨진 자의 아픔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싶어 가을과 이별식이라도 하자 싶어 현관문을 나선다.

 

 가을인지 겨울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바람이 분다. 가로수에 들어선 벗꽃나무 잎 새가, 프라타너스의 잎 새가 견디지 못하고 공중에서 소용돌이치며 날아오르다 곤두박질 친다. 이별이 서운했던 것일까? 저리도 몸부림치게...  아무래도 가을과의 이별이 못 견디게 힘든 모양이다.

 

 오패산 둘레 길에 들어서니 바람은 더욱 거세게 휘몰아친다. 작은 산새들이 이리도 많았나 싶게 이리 날고 저리 난다. 아직은 11월인데 바람이 거세다. 그 곱던 단풍으로 모든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단풍잎들이 거센 바람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정없이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 밑에 청춘 하나가 자못 심각하다. 어딘가 진한 그리움이 묻어 있다.

 

 낙엽을 밟으며 산모롱이를 돌아서자 노란 껍질에 빨간 열매가 들어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콩알만 하다. 어릴 때 기억으론 고향에선 저 열매를 ‘눈까재비’라 불렀다. 쉽게 말하면 저 열매를 만지다가 눈을 비비면 눈이 까진다고 했는데 실제로 눈이야 까지겠냐면 어릴 적엔 큰일이 날 것만 같아 저 열매가 보이면 빙 돌아서 갔다. 그래도 만난 게 반갑다고 고향 친구 만난 것인양 다가가서 들여다 본다.

 

  그러고 보니 나무 밑 언저리마다 그래도 내 생의 언저리에 남겠다는 낙엽이 수북하다. 멀리 떠나가기엔 가슴이 너무 시렸나보다. 그 위로 청솔모 한 마리가 재빨리 지나간다. 빈 나뭇가지에 회색빛 새들이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날아다닌다. 숲이 한창일 때는 보이지 않더니 새들이 제 법 많이 보인다.

 

  양지바른 곳에 군데군데 산국(山菊)이 피어 있다. 이 찬바람 부는데 냉기도는 싸늘한 산비탈에 꽃을 피우다니 경이롭기까지 하다. 산국(山菊)에게 달려가 꽃향기에 취해 본다. 알싸한 꽃내음이 가슴속을 가득 채운다. 누굴 위해 핀 꽃인지 모르지만 곧 서리도 내릴텐데..... 꽃도 질 텐데 ..... 그러면 남겨진 이는 뭐라 말할까?

 

가을은 언제나 냉정하다.

11월의 가을이야 더 말 할 나위도 없는 것. 내가 보지 않는 사이에 단풍은 그렇게 단단히 잡고 있던 나뭇가지를 뿌리를 줄기를 놓아두고 떠나가겠지. 언제쯤이면 떠나가는 것에 대하여 담담해 질 수 있을까? 꽃이 사라진 길을 따라 나도 묵묵히 따라 갈 수 있을까? 이 가을 떠나가는 단풍에 대하여 이별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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