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갔을까?
보이지 않는다. 지하 주차장에 세워 둔 내 자동차가 어디로 갔는지 아무리 헤매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분명 지하3층 주차장에 세워두었는데 나랑 숨바꼭질이라도 하자는 심산인지 끝내 눈에 띄지 않는다. 지하 4층에 세워 두었는가 싶어 발을 돌리려는 찰나 어디서 나타났는지 내 자동차가 은빛 웃음을 머금고 내 앞에 서 있다. 나 참! 무슨 조화 속인지 .....
사람만 숨바꼭질 하는 게 아니라 이런 사물들도 숨바꼭질이 하고 싶은 가 보다. 잘 넣어 둔 손톱깎기를 찾으면 대 여섯개나 되는 손톱깎기는 어디로 숨었는지 아무리 찾아도 안 보여 포기하고 돌아서면, 며칠이나 아님 몇 달 후에 슬그머니 내 곁에 와 있고, 귀이개는 매번 어디로 숨는지, 사도 사도 끝없이 숨어 버린다.
어제 아침이다.
출근을 하려는데 자동차 열쇠가 없다. 가방을 뒤집어 엎어 보아도 안 보이고 어제 입던 옷을 탈탈 털어 보아도 없고 결국은 보관해 두었던 여분 열쇠를 찾아들고 출근을 하고 돌아왔다. 저녁 식사를 하려고 냉장고를 열었더니 자동차 키는 그 속에서 방긋 웃는다. 요즘은 이런 일이 비일비재 하다.
언제 가는 저녁 식사 준비를 하느라 시금치를 씻어 놓고 물이 끓어서 씻어놓은 시금치를 찾으니 또 숨어버리고 없다. 냉장고 안은 물론이고 베란다로 안방으로 미친 듯이 찾았지만 없다. 옛 어른들 말로 정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물은 설설 끓는데 씻어놓은 시금치는 보이지 않고 머리는 지끈지끈 아파오고 할 수 없이 가스렌지 불을 끄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두부찌개를 끓이려고 그 냄비 뚜껑을 열었더니 ‘아~~뿔사, 곤죽이 되어버린 시금치가 그 속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당연하다 싶다.
내 머리가 제조된지 반백년도 지났으니.... 그 동안 AS 한 번 받지 않았으니.... 내 머리가 좀 어떻게 되는 게 당연하다지만 이 건 좀 심하다 싶다. 계약서를 찾아 장롱을 다 뒤집어 놓기 일 수요. 들고 있는 리모콘을 찾아 삼만 리다. 그런가하면 냉장고 문을 열고 서서 내가 왜 냉장고 문을 열었는지 몰라 망연히 서 있다 슬그머니 냉장고문을 닫고 돌아 선다.
일상의 잡동사니들이 날 못 알아주니 ‘골탕을 좀 먹어봐라’하고 시위를 부리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 잡동사니들의 의리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어느 날 생각지도 않게 철 지난 주머니에서, 거실 쇼파 밑에서 싱긋 웃으며 나타나 제 할 일을 해 주니 얼마나 다행인가. 물론 시효가 한 참 지나서 나타나 팽겨 쳐져 버리는 일도 발생하지만, 요즘 같이 배신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끝까지 주인을 버리지 않는 충성심 하나는 인정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