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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모르는 것들?

茶香 2021. 12. 22. 12:46

“어떻게 지내?”

그 남자가 물었다.

“응, 그 게 말이야..... 그냥저냥 살지 뭐. 무슨 특별한 일이 있을 게 있나.”

 

   대답은 궁색했어요. 손목을 다쳐 사는 게 조금은 힘들다고 얘기도 못 했어요. 그 남자가 걱정할까 봐서는 아니고. 부끄러웠습니다. 얼마나 칠칠치 못하면 청소하다가 다치냐고 할까 봐서요. 왜 아니겠어요.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이 다친 상황인데 남들 생각이야 안 봐도 짐작이 가거든요. 그 남자도 한 해가 저물어 가니 나처럼 안부가 궁금했던 모양이었어요. 전화를 한 걸 보면 ..... 그렇지만 그 남자에게 미주알고주알 얘기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왠지 모르지만.

 

 요즘은 누군가에게 지금 살고 있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게 궁색하고 부끄러웠어요. 그 남자에게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거나 감출 수도 있었어요. 단풍놀이도 다녀오고, 친구들과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녔다고 말할 수도 있었겠지요. 글 쓰는 일도 술술 잘 풀려 글도 잘 쓰고 있다고 하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현실은 그런 게 아니었었어요. 글도 매끄럽게 써지지 않아요. 물론 손목을 다쳐서 컴퓨터 자팜ㄴ 앞에 앉아서도 생각은 마냥 산지사방으로 흐트러지지 글을 쓸 수 없는 게 당연하지요.

 

 한 달 전에, 제 글을 받아 싣고 있는 곳에서 제 차례라고 수필 한 편을 달라는 못 주었어요. 일 년에 두 어 번 내 글이 올리는 곳인데 주제가 주어지 거든요. 컴퓨터 자판 위에 손만 올려놓으면 멍해지고 생각은 산지사방으로 튀는데 도저히 글을 쓸 수 없었어요. 정확히 한 달 후에 수필을 또 달라는데 좀 짜증이 났어요. 그렇다고 짜증을 낼 수는 없고 저번에 말한 대로 제 차례를 제일 뒤로 미뤄 달라고 하고 끊었지요. 사실 쓰고 싶은 마음이 끝도 없이 달아 난 상태였거든요.

 

 사람들은 손목이야 깁스만 풀면 다 나은 줄 알아요. 사실 저도 그랬거든요. 오늘은 내일은 하며 손꼽아 가면서 깁스 푸는 날을 기다렸는데 누가 알았겠어요. 깁스 풀고 나면 그때부터 더 아프다는 걸. 꼬박 6주를 깁스하고 살아서 팔 전체가 망가진 거예요. 손은 약간 오므린 채 살아서 깁스한 부분 손바닥 피부가 벗겨지며 화상 입은 것처럼 벌겋게 달아오르고 아파요. 손가락은 펴지지도 오므라지지도 않고 어정쩡한데 손가락 관절마다 통증에 잠을 못 이루고. 물론 팔목이나 어깨도 아파요. 팔의 힘줄들이 오랜 깁스 생활로 오그라들어 팔을 내리면 팔 전체에 통증이 오고....

 

 글을 쓴다는 건 엄두도 못 내는데 글 보내는 편집부에서는 깁스 풀었으니 당연히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 거지요. 이런 처지는 뻔한 오늘이고 내일입니다. 왼팔을 쓸 수 없어 오른팔 팔목도 고장이 났어요. 왼팔을 쓸 수 없으니 모든 일을 오른팔로 생활을 하다 보니 오른팔이 힘에 겨웠던 것이지요. 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 날들이었지요. 하니 매일매일이 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리고 살았어요. 몸과 마음이 한없이 쪼그라진 모습으로 어떻게 지나느냐는 그 남자의 물음에, 얼버무리고 마는 수밖에 없었던 제가 원망스러웠지요. 통화하는 내내 한숨을 삼키며 창밖에 시선을 고정시켜야 했어요. 궁금해서 기다렸던 전화에도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난감했거든요.

 

 그 남자와 전화를 끊고 오늘 이 시간까지 머릿속에 맴도는 것 중 하나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걸까’? 한 친구처럼 24시간이 모자라게 전국을 누비며 사는 게 잘 사는 건가요? 아니면 손자들을 늘 내 눈앞에 두고 잘 사는 건지요? 내 눈에는 그저 나를 위한 것이 아니고 방황하는 걸로, 그것밖에 할 일이 없어서로 보여요. 돌아봐도 나를 위해 기운차게 사는 방법이 보이지 않아요. 제 눈에는 어디를 둘러봐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나 한정돼 있어요. 답답합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미궁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요즘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