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의 여자가 웃는다. 내가 웃는다.뽀글거리는 머리를 매만지며 호호거리며 웃는다. 몰골이야 말이 아니지만 누가 봐도 행복하고 만족한 웃음이다. 내가 내 손으로 파마를 했으니 날아갈듯 하다.
언젠가 부터인가 내 손으로 파마를 하고 싶었다. 미장원에 가서 파마를 하고 오면 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명 미장원에선 보기가 괜찮은 것 같았는데 머리를 감기만하면 이상하게 변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파마를 머리 전체에 하지 않고 부분만 하고 싶은데 그렇게 해주지도 않을뿐더러 내가 설명을 열심히 해도 나오는건 ‘역시나’ 가 돼 버리는 게 다반사였다.
그러나 내 손으로 파마를 한 가장 큰 이유는 성질 탓이다. 뭐든 한 번 마음속으로 파고들면 한 번은 하고 마는 직성 탓에 이 년 여를 벼르던 파마를 내 손으로 하고 말았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겁이 없는 탓이다. 내가 파마를 내 손으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 진 날. 친구가 날려 보낸 카톡 문자 한 줄 ‘ 참 겁도 없다. 머리카락 다 망가지면 어떡하려고...’ 대단하긴 하다. 였다. 하긴 겁이 없으니, 아무 것도 모르니 용감하게 실천 했을 것이다.
‘ 엄마, 머리가 그게 뭐야?’ ‘엄마, 라면머리 같아요’ ‘여보! 머리에서 폭탄 터졌어?’ 내가 처음 파마하고 집에 들어오던 날 우리 집 식구들 반응이 이랬다. 그리고는 모두들 그 머리 좀 풀라고, 꼭 딴 집에 들어오는 것 같아 되돌아서고 싶다고.... 내 마음도 그랬다. 분명 미장원에선 괜찮았는데 날이 갈수록 머리는 산발이 되었다. 내가 봐도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머리모양의 역사를 보면, 귀밑에서 찰랑거리던 단발머리에서, 포니테일 머리로, 다시 긴 생머리로 갔다. 그러다 아이를 낳고는 그냥 커트머리로 살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난 평생 파마를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때 생각엔 뽀글이 파마란 어딘지 모르게 좀 천박스럽고 경박해 보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파마란 나하고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내가 파마를 처음 한 것은 사십 중반이 넘어 갈 즈음이었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나도 아줌마다. 그러니 파마머리는 뗄래야 뗄 수가 없다. 아줌마 하면 뽀글거리는 파마가 떠오르고. 파마머리하면 아줌마가 떠오른다. 바로 한국 아줌마들의 상징이다. 아줌마들이 파마머리를 하는 건 두상(頭上)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머리가 둥굴 납작하다. 거기다 나이가 들면 머리가 가늘어지고 힘이 없어 처
지니 생머리를 그대로 두면 비 맞은 생쥐 꼴로 추해 보인다. 예전 같으면 야 곱게 빚어 비녀를 찌르면 우아해 보이지만 지금은 비녀 꽂는 시대도 아니다. 그러니 파마를 해서 머리 뿌리를 살려놔야 드라이를 하든, 구르프를 말던, 머리카락에 힘이 실려 내가 원하는 대로 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아줌마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파마의 역사는 얼마나 될까?
파마의 역사는 기원전 3,000년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고대 이집트 나일강 유역의 알카리 성분의 진흙을 이용해서 머리를 말았다는 설이 있다. 그런가하면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진흙으로 머리를 둥그렇게 만드는 것을 본 독일 사람들이 먼저 진흙파마를 하기 시작했고 그 것이 불편하자 화학약품이 쓰이기 시작 했다고 한다.
미용사 친구의 말을 빌리면 파마머리를 말자면 많은 경험과 기술이 축척 되어야 한다고 한다. 적어도 삼 년 이상의 실무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한다. 이것은 미용 기술 중 가장 고난도에 속하는 기술이라는 뜻일 게다. 그러나 아무리 고난도 기술을 터득하여 파마머리를 말 수 있어도 자기 머리는 말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고난도 기술을 요하는 파마머리를 미용의 ‘미’자도 모르는 내가 했으니 어쩌면 무모하고 겁 없었다는 이야기가 맞을 게다.
무모하게 겁도 없이 내 손으로 파마를 하겠다고 인터넷을 뒤졌다. 여기 저기 뒤지다보니 ‘셀프 파마 용구’를 파는 곳을 알게 되었다. 파마를 할 수 있는 모든 용구가 세트로 만원 미만으로 판매 되고 있었다. 뭐가 파마약이고 뭐가 중화제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안내문대로 말았지만 너무나 미끄러워서 첫 날은 마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다. 말지 못하는 이유가 미끄러운 이유라면 이 미끄러움을 없애기 위해 다른 쪽에서 접근 했다. 파마롯드를 구르프처럼 만들어 머리를 말았다. 비닐 모자를 쓰고 한 시간이 흐른 뒤, 중화제를 발랐다. 그리고 삼십분이 지난 후 머리를 감았다. 대성공이었다. 내 일생의 히트작이다.
인류가 발전해 오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싶다. 세상을 살면서 물 흐르는 대로 흘러가거나, 바람 부는 대로 흘러가면 참 편할 것이다. 그러나 가끔은 남이 안 된다고 하는 것을 거역해 보는 것. 그 것이 비록 참담한 실패를 가져오더라도, 작은 파문을으로 끝날지라도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역사가 되고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