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590 여름과 가을 사이 상자 텃밭 고추나무에 앙증맞은 하얀 꽃들이 눈부시게 피었습니다. 낮이고 밤이고 시끌벅적 잔치 집 같습니다. 있는지 없는지 존재감조차 보이지 않던 바람도, 아침저녁이면 슬쩍슬쩍 얼굴을 디밀고, 제법 시원하게 불어왔습니다. 여름 장마에 시들거렸던 상자텃밭 식구들이 너도 나도 발꿈치를 높이 들고 내미는 꽃들의 얼굴에도 제대로 화색이 돌았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가을을 맞이하는 기쁨에 자신감이 넘쳐 납니다. 땅을 움켜쥔 뿌리는 단단하고, 줄기들의 곧은 자세는, 그 누구에게도 꺾이지 않겠다는 결기마저 느껴집니다. 여름을 이겨낸 튼튼한 줄기들과 윤기 자르르 흐르는 이파리들은 줄기 끝마다 매달려 있는 열매와 꽃들을 키워 내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습기를 걷어 낸 햇살이 나날이 팽팽해지자, 상자 텃밭의 채소들은 .. 2023. 8. 27. 계단이 무서운 나이 날씨가 제법 선선합니다.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나서일 까요? 하지만 나이가 환갑이 지나고 고희가 지나도록 모기 입이 삐뚤어졌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한 번도 입이 삐뚤어진 모기를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름의 불볕더위도 아침저녁으로 누그러지고 따가운 햇볕도 힘을 잃은 게 피부에 와닿습니다. 풀도 나뭇잎도 더 이상 새순이 올라오지 않는 게 눈에 보입니다. 나이가 든 탓인지, 아파트만 나서면 땀이 비 오듯 쏟아져 없던 손수건까지 준비해 다녔던 무더운 여름이었습니다. 하도 더위가 기승을 떨어 가을이란 게 과연 오긴 올까? 그런 의구심까지 들었더랬습니다. 그랬던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긴 오나 봅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바람이 선들거려 벌써 가을? 그런 설레발 떠는 소리가 입에서 저절로 나왔.. 2023. 8. 27. 봄 비 내리는 날에는 &; 봄 비 내리는 날에는! /茶香 : 조규옥 언제부터 내렸는지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내렸다. 퇴직 후부터 시작된 한가로움이 나를 이끌어 숲을 바라보게 했다. 창밖 숲속 나뭇가지에 매달린 빗방울들이 부풀어 오르는 꽃망울들과 어깨를 겨누며 키 재기가 한창이었다. 봄이란 녀석은 가랑이가 찢어져라 저렇게 분주한데 나는 내 생애 그 어느 때보다 한가롭고 여유롭다. 봄이란 언제나 그랬다. 바라보는 사람이야 한없이 게으르지만 봄 풍경에 스며드는 것들은 쉴 새 없이 고단한 하루다. 아무리 그래도 오늘 같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에는 머릿속 근심 걱정이야 묻어놓고 쉼표 하나 찍어도 좋을 날이다. 귀를 열고 빗소리 삼매경에 빠져도 좋고 주방에 들어가 지글지글 전 부치며 태평가를 불러도 좋겠다. 2023. 3. 14. 3월 편지 3월 편지 /茶香 : 조규옥 3월입니다 떠나려 던 겨울이 며칠째 멈칫거리더니 그 예 눈인지 비인지 모를 눈물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 눈물 속에 지난 겨울의 혹독한 추위와 폭설 속에 사라졌던 길들이 뚫리어 사람과 사람에게로 가는 길이 열리면 올 봄에는 부드러운 꽃 향기 가득한 작은 꽃씨 하나 담겨있는 편지 한 통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그 꽃씨가 너무나 작고 초라하여 아무도 거들 떠 보지 않는 이름 없는 들꽃 씨라도 따뜻한 가슴을 지닌 사람으로부터 보내오는 까만 꽃씨 하나 들어있는 편지 한 통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2023. 2. 28. 이전 1 2 3 4 ··· 14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