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의 행복
/ 茶香 조규옥

‘와아~~~ 맛있다.’
친구들의 이 말 한 마디에 돌나물 물김치가 동이 났다. ‘맛있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 내가 이 친구 저 친구에게 물김치를 아낌없이 퍼 준 탓이다. 어디 그 뿐인가. 덤으로 오이소박이까지 동이 났다. 내가 이 물김치를 담은 것은 엊그제 먹었던 돌나물 물김치 때문이다.
옛 외갓집 근처에 갔다가 끼니때가 지나 길 가 음식점에 들어갔다. 하필이면 어째 고르고 골라 들어 간 곳이 ‘전설 따라 삼천리’를 찍으면 딱 좋을 분위기였다. 어두컴컴한 실내에 오랜 세월이 흘렀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먼지 기름때가 벽이고 천정이고 할 것 없이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었다.
을씨년스럽다. 먼지 때가 기름처럼 달라붙은 창가에 자리 잡고 앉아도 마음이 편치 않다. 꼭 내 옷에 다 달라붙을 것만 같다. 마음을 달래 볼 요량으로 휴대폰을 꺼내서 통기타 음악을 작게 켜 놓았다. ‘미소 짓는 그 입술이 하도 예뻐서 입 맞추고 싶지만은 자신이 없어~~~ ’ 그렇다. 꼭 나를 보고 부르는 노래 같다. 들어서자마자 아니라 느꼈지만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이 우중충한 곳에 눌러 앉았으니 이 무슨 못난 짓인지.....
손님이 없어도 너무 없다. 메뉴판을 죽 훌 터 보다가 ‘시골밥상’이라는 메뉴에 눈길이 멎는다. 단발머리의 앳된 여고생 같은 아가씨에게 음식을 주문하고 빙 둘러 본다. 예전에 내 어렸을 적 재봉틀이 내 옆에 잇다. 그 건너편에 숯을 넣어 다림질하던 다리미가 눈에 들어온다. 옛 풍경을 연출하려고 일부러 먼지 기름때를 묻히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렇지 않고서야 먼지가 뽀얀 채로 저리 둘 수 있을까 싶다. 천정 위에 매달린 백열등에도 예외 없다. 먼지 기름때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음식을 이제 사 만드는가 싶은 생각이 들 때 쯤, 상이 차려지기 시작 했다. 그저 그런 밥상이다. 비름나물, 취나물, 방풍나물무침 등이 눈길을 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맛있게 보인다. 된장찌개 한 수저 입 안에 떠 넣는다. 감칠맛이다. 생각보다 맛이 괜찮다. 기분이 좀 나아진데다 배고픔까지 겹쳐 꿀맛이다. 물김치 한 그릇이 눈길을 끈다.
돌나물김치다. ‘왠, 돌나물김치? ’ 하면서도 입이 가져간다. 입안에 상큼한 맛이 입 안에가득 퍼진다. 향기롭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맛보다 훨씬 상큼하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내가 담아 먹던 돌나물김치 맛이 아니다. ‘무얼 넣었을까?’ 젓가락으로 뒤적인다. 무우가 들어갔고 미나리가 눈에 뛴다. 그러고 보니 난 그냥 감자를 으깨 넣었는데 감자가 안 보인다. 풋내를 없애기 |
|
|
|

위해 풀을 쑤었다는 얘기다.
일요일 아침.
재래시장까지 쫒아가 돌나물 한 근을 샀다. 천원이다. 너무 많다. 그렇다고 오백원 어치 반근을 달라기엔 어째 미안하다. ‘그래, 그냥 다 물김치를 담지 뭐’ 싼 값 탓에 그냥 많으면 많은 대로 담기로 했다. ‘맛이 괜찮으면 친구들과 나누어 먹지 뭐’ 하는 마음이었다.
찹쌀가루로 풀을 쑤고 있는데 딸이 들어오다가 한 마디 한다. ‘엄마! 또 김치 담아요? 매일 무슨 김치만 담아요?’ 하며 제 방으로 들어간다. 하긴 어제도 오이소박이를 담았으니 그 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어제 담은 오이소박이야 딸이 워낙 잘 먹는 김치라 사흘 만에 또 담은 건데, 이틀 만에 또 김치를 담으니 그 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나는 여름 김치를 많이 담지는 않는다.그저 작은 통으로 하나 정도. 것두 아들네와 나누어 먹으니 그 양이란 보잘 것 없다. 여름 김치를 오래 두고 먹으면 맛이 없다. 그래서 자주 담는다.
오늘 저녁, 집 앞 음식점에서 동료들 모임이 있었다. 어제 담은 김치를 한 그릇 싸들고 음식점에 가서 풀어 놓았다. 모두들 시원하다고 아우성이다. 한 그릇씩 달라는 바람에 퍼주고 났더니 김치통 밑바닥이 보인다. ‘그럼 어때, 또 담지 뭐. 돈 크게 드는 일도 아닌데 뭐 .....’ 자심감이 부풀어 오른다.
돌나물은 풀이다. 지금 들판에 나가면 지천으로 널려있는 풀이다. 누가 제일 처음 이 풀을 뜯어 김치를 담았을지 궁금하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입에 착착 달라붙는 김치를 담은 이는 아마도 먼 옛날, 들판에 일을 나갔던 남편을 기다리던 어느 아낙이지 싶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찬거리는 안 보이고, 혹시나 하여 집 안 팍을 돌아다니다. 눈에 들어 온 돌나물. 그 곳이 아마 장독대 돌받침 부분일 수도 있고, 집 담벼락 밑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돌나물을 뜯어 흐르는 샘물가에서, 살살 흔들어 씻은 다음 식은 밥 한 덩어리를 으깨 넣고 김치를 담갔으리라.
무엇에 쫓기듯 살아가는 요즘 우리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김치 담는다’ 라는 말을 잊은 지 오래다. 여행마저도 다리가 아프도록 다녀야만 잘 다녀왔다는 인식이 강하게 배어있는 우리다. ‘언제 돌나물을 뜯고 풀을 쑤고 있느냐?’ 하겠지만 저녁 늦게 집에 들어서는 가족들의 허허러운 마음을 채워 줄 수 있다면 이 정도의 느긋함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이젠 좀 느긋하게 살고 싶다. 거리 음식에 길들여져 가는 가족들을 위해 조금은 수고스럽더라도 나만의 손맛으로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이고 싶다. 그러다가 가끔씩 들리는 지인들에게도, ‘내 손 맛이야, 맛 좀 봐’ 하며 음식이 바닥이 나더라도 넉넉함을 나누어 주고 싶다. 그런 면에서 단 돈 천원을 가지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행복을 안겨 주었으니 그 탓에 나도 행복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