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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香의 수필과 칼럼

행복한 약속

by 茶香 2021. 1. 12.

행복한 약속!

 

 자고 일어나 방문을 밀면

댓돌까지 눈이 쌓였더랬습니다..

분명 어젯 밤 늦게까지

눈을 쓸고 또 쓰고 했는데도

세상은 온통

은빛 겨울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구태여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뚝뚝 솔가지 부러지며

!!’ 눈폭탄 소리가 들렸습니다.

논두렁 밭두렁 풀잎 밑에

산새들 옹기종기 몰려들어

짹짹짹배고픈 울음을 울었습니다.

 

 그런 고향의

푸짐한 눈이 서울에도 내렸습니다.

여기저기서 눈 때문에 일어난 사고들이 들려오지만

출근 할 일 없는 여자는

쏟아져 내리는 눈풍경에 행복했습니다.

어디 저뿐인지요.

그 쏟아져 내리는 함박눈에

매혹되었다는 친구가

눈 내린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겨울이면

흙을 밟아 본 기억이 없다는

같은 추억을 가진 고향 친구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제 고향은 겨울이면

항상 눈이 내렸다는 기억을 간직하고 삽니다.

도란도란 고향 얘기에

시간이 가는 줄 몰랐습니다.

 

 골짜기를 사이에서

불어 내리는 시린 바람은

뽀오얀 은빛 눈보라를 만들며

세차게 달려드는데

두 볼이 얼어

붉을 대로 붉은 아이들은 피할 생각은 커녕

그 눈보라 속에 뛰어들어

깔깔대고 웃어대고

처마 끝마다 매달리던 고드름까지

마당에 닿을 지경으로 자랐다는 이야기며

이야기는 이야기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얼마나 신이 났는지

뜬금없이 약속 하나 잡혔습니다.

이 코로나가 극성을 떠는 시기에

어디 가서 맘 편히 얘기할 때가 있다고

덜컥 약속을 잡았는지

휴대폰을 내려놓는 순간부터

후회가 밀려 왔습니다.

 

 “있잖아,

우리 눈 내리는

넓은 창이 있는 카페에 앉아

차 한잔 마시자.”

!

정신 차려,

우리가 나이가 몇 살인데....”

나이가 뭐가 중요하니?

그리고 눈 안 내리면 어때?

푸짐하게 눈 내렸다는 게 중요하지.”

하긴 ..... 그래, 그러자.”

그렇게 유치한 약속 하나 잡혔습니다.

 

 그 때까지

한베리아란 이름까지 얻은 강추위에

내린 눈은 녹지 않을 것이고

덕분에 약속 날까지

콩닥콩닥 뛰는 가슴은 이어질 것이고

너른 카페 창가는 아니더라도

전철 개찰구 앞 의자에 앉아

자동판매기에서 뽑은 커피 향기에

실려 오는 행복을 맘껏 누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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