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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너뿐!

by 茶香 2021. 11. 17.

 가을이 오는 거리를 걷다가 유치원 담벼락에 기대어 있는 마른 나뭇가지에 시선을 뺏겼습니다. 버릇대로 가던 걸음 멈추고 급하게 후다닥 스마트폰을 꺼내 듭니다. 비상상황입니다. 가던 길을 잠시 쉬었다 갈 요량이었는지 마른 나뭇가지에 빨간 고추잠자리 한 마리 앉아있습니다. 그야말로 비상상황입니다. 고추잠자리가 살짝 접은 날개를 펴고 다시 길을 떠나기 전에 찍어야만 합니다. 고추잠자리란 녀석들은 쉬고 있는 것 같아도 경계태세 하나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습니다.

 

  마음이 조급해니다. 얼른 스마트폰을 열고 후다닥 카메라를 켰습니다. 고추잠자리를 화면에 담아야 하는 시간이 왜 그리 느린지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가는 시간입니다. 따져보면 카메라 켜고 찍는 시간은 아주 짧은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그 시간이 왜 그렇게 긴지요. 숨까지 죽여가며 카메라에 고추잠자리를 향해 초점을 맞추고 셔터를 누릅니다. 그래 봤자 카메라엔 잠자리의 고운 날개로 만들어 준 허무한 바람만 일렁였습니다.

 

 이런 일은 오늘도 있었습니다. 황량한 바람이 산책길을 휩쓸고 지나갈 때마다 우수수 단풍잎이 떨어집니다. 나는 산비탈 위에서부터 바람이 일어 산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을 쳐다보며 단풍나무 밑에 서 있습니다. 우수수 떨어지는 늦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즐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문득 바람도 없는 틈을 타고 단풍잎들이 하나 둘 떨어지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오렌지빛 저녁 햇살에 떨어지는 단풍잎들을 더 눈부시게 빛나고 있습니다.

 

 참 당돌하게도 떨어지는 단풍잎을 찍어보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찍으면 좋을까? 고민할 새도 없이 위쪽 산비탈에서 소슬바람 불어 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후다닥 스마트폰 카메라를 켜고 부는 바람 따라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손이 바쁩니다. 셀 수 없이 사진이 찍히고 드디어 카메라가 묵직해졌다고 느낄 무렵 길섶의 나무의자에 앉았습니다. 소 뒷걸음질에 쥐 잡는다고 운 좋으면 멋진 사진 한 장 걸릴지도 모르니까요. 내가 뭐 사진작가도 아니고 미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니 물량에 승부를 걸어 본 것이지요.

 

 예쁜 사진 한 장 얻자고 온갖 자세란 자세는 다 동원했습니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젖히고 찍다가 유난히 예쁘다 싶은 단풍잎을 만나면 따라가며 찍었습니다. 하늘을 향 해 젖혔던 고개를 숙이고 허리까지 굽혀가며 찍었습니다. 무릎을 굽혀야 한다면 무릎을 굽히고 찍고 엎드려야 한다면 엎드려 찍을 각오도 늘 가지고 사는 나입니다. 아마 예쁜 사진이라면 기어서라도 찍을 겁니다. 오늘만 큼은, 그런 모습 요즘은 지켜보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저 슬며시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못 본 척 지나들 갑니다.

 

 산책길 길섶 나무의자에 앉아 뻣뻣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단풍잎들이 어서 찍은 사진이나 보자고 보챕니다. 아 그렇지!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찍어놓은 사진들이 머무는 갤러리에 들어갑니다. ‘이거는 아니고...’ ‘이것은 더욱 아니고...’ ‘아니 이거는 뭐냐?’ 사진을 들여다보며 그만 큭큭 웃고 맙니다. 내가 신은 운동화에 노란 은행잎이 반 장이 슬쩍 걸쳐 있습니다. 꼭 엉덩이 하나가 걸쳐 있는 것같이 묘한 모습입니다. 살짝 비틀린 모습에 웃음이 나긴 하지만 오늘만 큼은 아닙니다. 한참을 돌려봐도 이거다 싶은 사진은 없습니다. 허무함이 사람 마음을 쓸쓸하게 합니다. 오렌지빛으로 빛나던 햇살도 산 너머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사진 한 장 건지자고 한바탕 광대놀음 놀았으니 좋은 날이었다. 그것으로 위안을 삼으며 의자에서 일어났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어둑한 밤하늘에 별 하나 따라옵니다. 내가 별을 따라가는지 별이 날 따라오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오늘 떨어진 단풍잎 하나라도 그대에게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가을이니까. 낙엽지는 가을이니까. 오늘 밤 꿈에는 그대의 함박웃음 가득 담은 문자 한 줄 왔으면 더욱 좋겠습니다.